[헌정과 철학 제6화] 1968 포항종합제철 신화: '실패하면 동해 바다에 빠져 죽자' 영일만의 우향우 결기
1968년 포항제철 영일만 신화 — '실패하면 동해 바다에 빠져 죽자' 우향우 결기로 끓여낸 1,500도 쇳물과 중화학공업 제철보국의 서사시
- 1968 포항종합제철 신화 — 세계의 차관 거부를 뚫고 대일 청구권 자금 전환과 우향우 사생결단으로 세계 최단기 제철소를 완공한 제철보국의 기적
- 산업의 쌀과 무소유 청렴 — 조선 자동차 중화학공업의 혈맥에 철강을 공급하고 주식 한 주 갖지 않은 무욕의 공복과 POSTECH 설립으로 헌정 보수의 길 제시
1968년 4월 1일 창립된 포항종합제철(현 POSCO)은 황무지나 다름없던 영일만 모래벌판에서 "선조들의 피값으로 짓는 제철소다. 실패하면 우리 모두 영일만 바다에 빠져 죽자"는 결연한 '우향우(右向右) 정신'으로 대한민국 최초의 현대식 일관제철소를 일구어낸 '제철보국(製鐵報國)의 위대한 신화'이자 대한민국 헌정사 최대의 산업 혁명이었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 100달러 안팎의 최빈국 시절, 세계은행(IBRD)과 서방 선진국들이 "한국의 제철소 건설은 무모한 도박이자 자살행위"라며 차관을 전면 거부했을 때, 박정희 대통령의 굳은 결단과 청암 박태준 사장의 초인적인 리더십은 대일 청구권 자금을 투입하는 담대한 역발상으로 1973년 6월 9일 마침내 기적의 첫 쇳물을 쏟아냈습니다. 포항과 광양에 세계 최고의 일관제철소를 건설하여 조선, 자동차, 전자, 기계 등 대한민국 중화학공업의 혈관에 가장 값싸고 질 좋은 '산업의 쌀(철강)'을 무제한 공급함으로써 한강의 기적을 견인했으며, 포항공과대학교(POSTECH)와 방사광가속기를 설립해 교육보국과 미래 과학기술의 찬란한 주춧돌을 놓았습니다.
- 포항제철은 세계의 냉소와 차관 거부를 뚫고 '우향우 사생결단'의 리더십으로 세계 최단기·최저 공사비의 일관제철소를 완공하여 제철보국을 실현했습니다.
- 조선, 자동차, 가전 등 대한민국 주력 제조업에 양질의 철강을 원가 수준으로 공급하여 한강의 기적과 중화학공업 강국의 든든한 혈맥을 완성했습니다.
- 박정희-박태준의 '종이 마패'로 외압을 차단하고 주식 한 주 갖지 않은 무소유 청렴과 POSTECH 설립으로 헌정 보수의 산업보국 철학을 완성했습니다.
"철(鐵)은 국력이다. 쇳물이 멎으면 나라의 숨통이 끊어지고, 쇳물이 솟구치면 민족의 번영이 약동한다."
근대 산업혁명 이후 모든 국력과 제조업 경쟁력의 원천은 '철강'에서 출발했습니다. 군함을 건조하고, 총포를 만들고, 철도를 깔고, 공장을 짓고, 다리를 놓는 국가 기간산업의 모든 뼈대가 철(鐵)이기 때문입니다. 철강을 자체 생산하지 못하는 국가는 결코 독립된 경제와 자주국방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이 냉혹한 국제정치와 산업사의 불변의 진리였습니다.
1960년대 말, 6·25 전쟁의 참화를 딛고 일어서던 대한민국이 영일만 모래벌판에서 목숨을 걸고 쏘아 올린 포항제철의 신화는, 단순한 제철소 건설을 넘어 5천 년 가난의 한(恨)을 끊어내고 중화학공업 강국으로 도약한 헌정사 최대의 경제 자주독립 선언이었습니다. 영일만의 롬멜 하우스에서 광양만의 바다를 메우기까지, 불가능을 가능으로 뒤바꾼 포항종합제철의 웅혼한 대서사시와 제철보국의 헌정사적 교훈을 재조명합니다.
01. "철(鐵)은 국력이다": 1인당 국민소득 100달러 최빈국의 절박한 산업화 결단
1960년대 대한민국은 농업과 단순 경공업에 의존하던 세계 최빈국이었습니다. 가발과 합판, 섬유를 수출해 번 푼돈으로는 3천만 국민을 먹여 살릴 수도, 북한의 무력 도발에 맞서 자주국방을 달성할 수도 없었습니다. 기계를 만들고 자동차를 조립하고 배를 띄우기 위해서는 값싸고 질 좋은 철강이 필수적이었으나, 당시 국내에는 고철을 녹여 조악한 철근을 만드는 소규모 전기로 몇 개가 전부였습니다.
철강의 90% 이상을 비싼 외화를 주고 외국에서 수입해야만 했던 대한민국 제조업은 만성적인 원가 부담과 공급 부족에 시달렸습니다. 철강 수입 대금으로 연간 수천만 달러의 피 같은 외환이 빠져나가면서 국가 무역수지는 끝없는 적자의 늪을 헤맸습니다. 철강이 없이는 1960년대 초부터 추진된 제1차,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도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철(鐵)은 국력이며 모든 산업의 쌀이다. 일관제철소를 짓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영원히 선진국의 하청 공장으로 남을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고대 로마 이래 철을 지배하는 민족이 세계를 주도했듯, 근대 산업국가로 진입하기 위해 일관제철소 건설은 피할 수 없는 민족사적 과제였습니다. 아무런 자본도 기술도 없던 최빈국이 거대한 용광로를 짓겠다는 담대한 결단을 내린 배경에는, 가난의 굴레를 반드시 끊어내겠다는 처절한 구국(救國)의 의지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철강은 모든 산업의 쌀이다. 쌀이 없으면 사람이 굶어 죽듯이, 철이 없으면 모든 공장과 나라의 경제가 멈추어 선다.”
— 박정희 대통령 포항제철 건설 구상 연설 중
02. 세계은행(IBRD)의 차가운 거절과 KISA 차관단의 좌초: 선진국의 비웃음에 맞선 벼랑 끝 외교
종합제철소를 짓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외화 자본과 선진 철강 기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1960년대 후반 대한민국 정부의 1년 예산이 1,000억 원 안팎이던 시절, 100만 톤 규모의 제철소를 짓는 데는 무려 1억 달러 이상의 거액이 소요되었습니다. 정부는 미국, 서독,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5개국 철강사들로 구성된 국제대한국제제철차관단(KISA)을 결성하고 세계은행(IBRD)에 차관 승인을 공식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1968년 말 발표된 IBRD의 조사 보고서(일명 '자프 보고서')는 대한민국에게 청천벽력 같은 사형선고였습니다. IBRD는 보고서에서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에 불과한 원시적 농업국이며, 철광석도 유연탄도 생산되지 않고 국내 철강 수요도 전무하다. 한국이 일관제철소를 짓겠다는 것은 경제성이 전혀 없는 무모한 자살행위"라고 결론 내리며 차관 승인을 전면 거부했습니다.
IBRD의 거부에 따라 미국과 서유럽 차관단(KISA)도 전원 철수를 선언했습니다. 미국 피츠버그의 US스틸과 웨스팅하우스 등 핵심 차관 파트너들도 등을 돌렸습니다. 국내에서도 야당과 언론, 대학교수들이 "망국적 제철소 도박을 당장 중단하라", "제철소를 짓다 나라가 파산한다"며 거센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박태준 사장은 워싱턴과 유럽 각국을 돌며 눈물겨운 설득전을 펼쳤으나 차가운 문전박대를 당했습니다. 선진국들의 차가운 냉대와 국내의 거센 회의론 속에서 대한민국의 제철소 꿈은 완전히 물거품이 될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03. 1969년 하와이 구상과 대일 청구권 자금 투입: 조상의 피값을 제철소에 쏟아붓는 역사적 역발상
선진국의 차관 거부로 제철소 사업이 완전히 백지화될 위기에 처했던 1969년 1월, 박태준 사장은 미국 출장길에 들른 하와이 호놀룰루 카할라 힐튼 호텔에서 며칠 밤을 지새우며 고뇌했습니다. 절망의 끝자락에서 파도 소리를 듣던 그의 뇌리에 번개 같은 역발상이 번뜩였습니다. "외국 차관이 막혔다면, 1965년 한일기본조약으로 확보한 대일 청구권 자금을 제철소 건설 자금으로 돌리면 되지 않겠는가!"
대일 청구권 자금(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은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강제징용과 수탈로 희생된 식민지 선조들의 피와 눈물의 대가였습니다. 원래 농림수산업 분야에 나누어 투입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이 소중한 민족의 자금을 종합제철소라는 국가 기간산업에 전액 집중 투입하자는 담대한 승부수였습니다. 귀국 즉시 청와대로 달려간 박태준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이 구상을 보고했고, 박 대통령은 무릎을 치며 "임자 생각이 옳소. 즉각 일본과 담판을 지으시오"라고 전폭 승인했습니다.
박태준은 즉시 도쿄로 날아가 일본 정재계의 거물들을 상대하며 치열한 외교전을 펼쳤습니다. 신일본제철의 이나야마 요시히로 사장, 후지제철의 나가노 시게오 사장 등 일본 철강업계 원로들을 찾아가 "과거의 불행했던 역사를 딛고 아시아의 번영을 위해 한국의 제철소 건설을 도와달라"고 진정성 있게 설득했습니다. "실패하면 내 목을 베어가라"는 박태준의 결연한 기개와 논리에 감복한 일본 정부와 신일본제철, NKK, 가와사키제철 3사는 마침내 1억 1,948만 달러의 청구권 자금 전용과 세계 최고 수준의 철강 기술 이전을 전격 승인했습니다. 절망의 수렁에서 피어난 하와이 구상은 대한민국 산업화의 물줄기를 바꾼 위대한 역전극이었습니다.
04. 박정희-박태준의 '종이 마패'와 백지위임 리더십: 정치적 외압을 차단한 제도적 방패
1968년 4월 1일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가 창립되자, 정치권과 관료들은 수많은 이권과 납품 청탁, 친인척 인사 압력을 가하며 제철소 사업을 흔들려 했습니다. 국가 예산의 상당 부분이 투입되는 거대 프로젝트였기에 부패와 정경유착의 유혹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이때 박정희 대통령은 박태준 사장에게 친필 서명이 담긴 백지 메모를 건넸습니다. 이른바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전설로 남은 '박정희의 종이 마패'였습니다. 메모에는 "포항제철 건설과 관련된 모든 일은 박태준 사장의 결재를 거쳐야 하며, 국무총리와 장관을 포함한 누구도 이에 일절 간섭하거나 압력을 넣지 말라"는 추상같은 지시가 담겨 있었습니다.
이 '종이 마패'는 단순한 특권이 아니라, 정치적 외압을 원천 차단하고 전문가에게 전권을 부여한 혁신적인 국가 거버넌스의 상징이었습니다. 박태준은 정치인들의 청탁 서류를 '종이 마패'와 함께 그대로 반려하며 오직 실력과 기술 중심의 투명한 입찰 및 인사 시스템을 확립했습니다. 관료주의의 간섭과 지대 추구(Rent-seeking) 행위를 국가 최고 통치권자가 원천 봉쇄함으로써 신생 국영기업이 관치 부패에 물들지 않고 오직 기술 혁신과 생산성에만 매진할 수 있는 최적의 지배구조가 완성되었습니다. 국가 최고지도자의 절대적인 백지위임 신뢰와 최고경영자의 목숨을 건 무한 책임 결합은 포항제철이 세계에서 가장 깨끗하고 효율적인 공기업으로 성장하는 결정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05. 영일만 모래벌판과 '우향우(右向右)' 정신: "실패하면 우리 모두 동해 바다에 빠져 죽자"
1970년 4월 1일, 마침내 경북 영일만 모래벌판에서 포항제철 제1기 설비 착공식이 거행되었습니다. 거센 갯바람이 휘몰아치는 허허벌판에는 흙먼지만 날렸고, 도로와 전기, 공업용수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최악의 환경이었습니다. 무른 모래벌판에 거대한 제철 설비를 올리기 위해 20만 개가 넘는 강관 파일(말뚝)을 지하 암반까지 박아 넣는 기초 난공사가 이어졌습니다. 박태준 사장은 현장에 조립식 판잣집인 일명 '롬멜 하우스'를 짓고 군용 야전 침대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24시간 철야 현장 지휘를 시작했습니다.
공사가 시작되자마자 태풍이 불어 닥쳐 공사장이 물바다가 되고 모래바람이 눈을 뜰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노동자들의 사기가 꺾이고 불안감이 엄습할 때마다 박태준 사장은 전 직원을 영일만 백사장에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산업사의 가장 비장하고 웅혼한 명연설을 쏟아냈습니다.
"우리가 지금 쓰는 이 돈은 보통 돈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선조들이 피 흘리고 목숨을 바쳐 받아낸 피값이다. 우리가 만약 이 제철소를 실패한다면, 우리는 역사와 민족 앞에 씻을 수 없는 역적이 되는 것이다. 실패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모두 오른쪽으로 돌아(우향우) 저 영일만 바다에 빠져 죽어야 한다. 목숨을 걸고 반드시 쇳물을 뿜어내야 한다!"
'우향우 정신'으로 무장한 현장 기술자와 노동자들은 하루 3교대로 철야 작업을 이어가며 피땀을 쏟아부었습니다. 자재가 부족하면 밤을 새워 구해오고, 비가 오면 비닐을 뒤집어쓰고 콘크리트를 타설했습니다. 조국의 번영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진 롬멜 하우스의 투혼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뒤바꾼 영일만의 기적을 낳았습니다.
06. 80% 완공 구조물 전격 폭파와 무결점 품질주의: 단 1밀리미터의 부실도 용납하지 않는 장인정신
포항제철 건설 현장에서 박태준의 품질과 안전에 대한 기준은 서슬 퍼런 칼날 같았습니다. 그는 "철을 만드는 공장은 1,600도 고열의 쇳물을 다루는 곳이다. 단 1밀리미터의 오차나 부실도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고 공장 전체를 파멸로 몰고 간다"며 완벽주의 시공을 요구했습니다.
1977년 포항제철 제3기 설비 확장 공사가 한창이던 어느 날, 박태준 사장은 발전소 송풍 설비 구조물 콘크리트 기초에 미세한 균열이 발생한 것을 현장 순시 중 발견했습니다. 당시 해당 구조물은 이미 공정률 80% 이상 완공되어 수억 원의 공사비가 투입된 상태였고, 시공사 간부들은 "에폭시로 틈을 메우면 구조상 문제가 없다"며 준공을 읍소했습니다.
그러나 박태준 사장의 결단은 추상같았습니다. "포철의 역사에 부실이란 있을 수 없다. 부실한 기초 위에 세운 제철소는 국가와 선조들에 대한 배신이다. 당장 다이너마이트를 가져와 폭파하라!"
80% 완공된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굉음과 함께 산산조각 났습니다. 현장의 모든 노동자와 엔지니어들은 숨을 죽이고 전율했습니다. 이 전격적인 폭파 사건은 포항제철 전 임직원과 협력업체들에게 "타협 없는 완벽주의와 무결점 품질주의"라는 절대적 기업 문화를 뼛속 깊이 각인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단 1원의 부실 공사도 용납하지 않는 박태준의 철저한 장인정신이 있었기에, 포항제철은 전 세계 철강 역사상 유례없는 최단기 무사고 정상 가동이라는 금자탑을 쌓아 올릴 수 있었습니다.
07. 1973년 6월 9일 07시 30분, 첫 쇳물이 뿜어져 나오다: 세계 철강사를 경악시킨 기적의 순간
1973년 6월 9일 새벽, 영일만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포항제철 제1고로(용광로)에 불을 지핀 지 21시간 만인 아침 7시 30분, 마침내 용광로 하부의 출선구가 열렸습니다. 거대한 천공 드릴이 내화물 벽을 뚫자마자 오렌지빛 불기둥과 함께 거대한 화염이 치솟았습니다.
순간, 1,600도가 넘는 선홍빛의 눈부신 첫 쇳물이 굉음을 내며 활화산처럼 쏟아져 나왔습니다. 5천 년 가난과 수탈에 신음하던 대한민국이 역사상 최초로 독자적인 현대식 일관제철소에서 만들어낸 '기적의 첫 쇳물'이었습니다.
출선구를 둘러싸고 숨을 죽이며 지켜보던 현장 노동자들과 기술자들은 일제히 헬멧을 벗어 던지며 "만세! 만세!"를 외쳤습니다. 얼굴에 검은 검댕을 묻힌 거친 사나이들이 서로를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박태준 사장 역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출선구 앞으로 다가가 두 손을 모아 조국과 민족 앞에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하늘이 대한민국을 도왔습니다. 선조들의 피값에 마침내 보답했습니다."
착공 3년 2개월 만에 완공된 포항제철 제1기는 전 세계 일관제철소 건설 사상 최단기 공기 완공이자, 톤당 건설비 287달러라는 세계 최저 공사비를 기록했습니다. 보고를 받은 박정희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눈시울을 붉히며 "임자가 정말 큰일을 해냈소. 민족의 한을 풀었소"라며 감격했습니다. IBRD와 선진국들의 비웃음을 완벽하게 침묵시키고, 대한민국이 세계 철강 무대의 주역으로 당당히 솟아오른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08. 제철보국(製鐵報國)의 완성: 조선·자동차·중화학공업의 혈맥에 피를 돌리다
포항제철의 성공은 대한민국 산업 구조 전체를 근본적으로 뒤바꾸어 놓았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1973년 1월 선언한 '중화학공업화 선언'은 포항제철의 안정적인 철강 공급이 뒷받침되었기에 비로소 현실화될 수 있었습니다.
포항제철이 생산한 고품질의 두꺼운 후판은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삼성중공업의 거대한 유조선과 컨테이너선이 되어 대한민국을 세계 1위 조선 대국으로 밀어 올렸습니다. 포스코의 얇고 질긴 냉연 강판은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포니와 소나타가 되어 세계 5대 자동차 강국의 뼈대를 이루었습니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냉장고, 세탁기, TV 등 가전제품 역시 포스코의 철강이 있었기에 세계 시장을 석권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박태준 사장은 포항제철의 철강 공급 가격을 국제 시세보다 훨씬 저렴하게 국내 제조업체들에 공급하는 정책을 고수했습니다. "포항제철이 이익을 많이 내는 것보다, 우리 철강을 쓰는 대한민국 제조업체들이 세계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갖는 것이 제철보국의 참된 길"이라는 확고한 철학 때문이었습니다. 포항제철의 값싸고 질 좋은 철강은 대한민국 중화학공업의 심장에 끊임없이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한 가장 위대한 혈맥이었습니다. 울산의 조선소와 자동차 공장, 창원의 기계공단, 구미의 전자공단이 모두 영일만 용광로에서 뿜어져 나온 쇳물의 힘으로 웅장하게 돌아갔습니다.
이러한 연쇄적 산업 파급 효과는 수출 주도형 공업화 전략의 승리를 낳았고, 대한민국은 1964년 수출 1억 달러에서 1977년 수출 100억 달러를 돌파하는 경이로운 고속 성장을 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제철소가 제조업 전체의 원가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가장 단단한 주춧돌 역할을 완벽히 수행한 것입니다.
09. 광양만 바다를 메운 세계 최대 제철소: 연산 2,100만 톤 초격차 글로벌 철강 신화
포항 1~4기 확장 공사로 조강 연산 910만 톤 체제를 구축한 포항제철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국내 산업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전남 광양만 바다를 매립하는 초대형 역사에 착수했습니다. 1981년 착공된 '광양제철소'는 총 면적 450만 평의 바다를 메워 건설된 최첨단 조업 시스템의 결정체였습니다. 원료 부두에서부터 제선, 제강, 압연에 이르는 전 공정이 일직선으로 배치된 세계 최초의 완전 연속 공정 제철소였습니다.
1992년 광양제철소 4기 종합 준공으로 포스코는 포항과 광양을 합쳐 연산 2,100만 톤의 세계 2대 철강 기업이자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로 우뚝 섰습니다.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자 덩샤오핑이 1978년 일본 신일본제철을 시찰하며 "중국에도 포항제철 같은 공장을 지어달라"고 요청했을 때, 이나야마 회장이 "중국에는 박태준이 없어서 불가능하다"고 답하자 덩샤오핑이 "중국에는 왜 박태준 같은 인물이 없는가"라고 탄식했다는 일화는 세계 철강사에 전설로 남아있습니다. 전설적인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역시 포스코를 직접 방문하여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고 훌륭하게 경영되는 최고의 철강 회사"라고 극찬했습니다.
기술 종속국에서 시작한 포항제철은 2000년대 들어 독자적인 파이넥스(FINEX) 공법과 기가스틸 등 세계 최고 수준의 고유 기술을 개발하며 글로벌 철강 기술의 표준을 주도하는 위치로 도약했습니다. 포항제철의 신화는 대한민국이 모방형 추격자에서 창조적 선도자로 변모하는 산업 발전의 살아있는 축도였습니다.
10. 교육보국과 미래 과학기술 입국: 1986년 POSTECH 설립과 3세대 방사광가속기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미래를 여는 유일한 열쇠는 오직 인재뿐이다. 제철보국의 완성은 교육보국에 있다."
포항제철이 세계적 궤도에 오르자 박태준은 대한민국의 미래 100년을 책임질 과학기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전 재산과 열정을 교육에 쏟아부었습니다. 1986년 12월, 그는 포항에 대한민국 최초의 연구중심 대학인 '포항공과대학교(POSTECH)'를 설립했습니다. 미국 코넬대학교의 세계적 물리학자 김호길 박사를 초대 총장으로 삼고초려하여 전권을 위임했습니다.
그는 세계 최고의 석학들을 교수로 모셔오기 위해 서울의 주요 국립대 총장보다 높은 파격적인 급여와 연구비, 교수 아파트를 제공했습니다. 학생들에게는 전원 전액 장학금과 기숙사를 지원하며 학업과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최상의 환경을 구축했습니다.
나아가 1994년에는 무려 1,500억 원의 거액을 투입하여 세계에서 5번째로 '3세대 방사광가속기'를 성공적으로 준공했습니다. 당시 국내 과학계에서는 "선진국도 하기 힘든 가속기를 한국이 운영할 수 있겠느냐"며 회의적이었으나, 박태준은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없이는 결코 기술 선진국이 될 수 없다"며 끝까지 밀어붙였습니다. POSTECH과 방사광가속기는 대한민국이 반도체, 바이오, 신소재, 나노 기술 등 첨단 미래 산업 분야에서 세계 정상으로 도약하는 데 결정적인 과학기술 인재와 연구 인프라를 공급하는 요람이 되었습니다.
11. 포스코 주식 한 주 갖지 않은 무욕의 공복(公僕): 절대 청렴과 숭고한 기업가정신
포항제철 신화의 가장 눈부신 도덕적 금자탑은 박태준 회장이 보여준 결벽에 가까운 절대적 청렴성이었습니다. 그는 수십조 원의 국가 자산이 오가고 수많은 이권이 걸려 있던 거대 공기업을 25년 동안 이끌면서도, 포스코 주식을 단 한 주도 소유하지 않았습니다.
퇴임 당시 그가 남긴 개인 재산은 서울 아현동의 낡은 단독주택 한 채가 전부였습니다. 수많은 정치권의 압력과 친인척의 납품 청탁을 가차 없이 거절했고, 납품업체로부터 단 1원의 리베이트나 뇌물도 받지 못하도록 전산화된 공개 입찰 시스템을 조기에 도입했습니다.
나아가 그는 "직원이 행복해야 최고의 쇳물이 나온다"는 철학으로 포항 지곡동과 광양 금호도에 대규모 주택단지와 제철학원 산하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일관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여 노동자들의 주거와 자녀 교육을 완벽히 책임졌습니다. 기업의 이윤을 사적으로 착복하지 않고 공공과 근로자 복지에 전액 환원한 그의 투명 경영은 노사 분규 없는 평화로운 일터를 일군 기적의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는 "기업의 이윤은 국가와 국민의 것이며, 나는 조국의 부름을 받아 공장을 관리하는 공복(公僕)에 불과하다"는 투철한 소명의식을 평생 실천했습니다. 권력이나 재물에 대한 사리사욕을 완전히 비워낸 그의 무소유 정신과 도덕적 결백성은, 모든 임직원들에게 절대적인 권위와 헌신을 이끌어내는 가장 강력한 리더십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박태준은 부패와 정경유착의 유혹을 완벽하게 극복한 가장 숭고한 기업가정신의 표상이었습니다.
12. 21세기 대한민국 헌정 보수의 영원한 산업보국 헌사
1968년 영일만 모래벌판에서 시작된 포항제철의 신화는 오늘날 21세기 대한민국 헌정 보수에게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멸의 교훈을 던져줍니다. 보수의 참된 가치는 기득권을 수구하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담대한 기업가정신', '선조와 후손 앞에 부끄러움 없는 무한 청렴', 그리고 '국가와 공동체의 번영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산업보국의 실천'에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웅변하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공급망 위기와 탄소중립, 수소환원제철(HyREX) 혁신이라는 대전환의 파도 속에서, 영일만 모래벌판에서 '우향우'를 외치며 세계 1위 철강 신화를 쏘아 올렸던 거인들의 결단은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위대한 나침반이 되어줍니다. 제조업 기반이 무너지면 국방도 첨단 IT도 모래성처럼 무너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쇳물처럼 뜨거운 애국심으로 조국 근대화의 심장을 뛰게 했던 포항종합제철의 땀방울과 영일만의 불꽃 앞에 머리 숙여 깊은 경의를 표하며, 자유와 번영의 대한민국 제조 강국을 온전히 지키고 풍요롭게 가꾸어 나갈 것을 온 국민과 함께 엄숙히 다짐합니다.
첫째, 초격차 첨단 소재 및 수소환원제철 등 친환경 제조 혁신: 탄소중립 시대에 발맞추어 수소환원제철(HyREX) 등 미래 친환경 제철 기술 개발에 국가 R&D와 세제 혜택을 전폭 지원한다.
둘째, 국가 전략 기간산업에 대한 파격적 투자 및 규제 혁파: 반도체, 배터리, 모빌리티, 조선 등 미래 국가 명운이 걸린 첨단 제조업 분야의 전력·용수 인프라와 규제 샌드박스를 획기적으로 구축한다.
셋째, 제2의 POSTECH 육성 및 첨단 이공계 과학기술 인재 양성: 기초과학과 첨단 공학 인재 양성을 위해 연구중심대학에 대한 재정 지원을 확대하고 세계 최고 석학 유치를 위한 파격적 보상 체계를 마련한다.
넷째, 기업가정신 고취 및 공복(公僕)의 무한 청렴 윤리 확립: 기업인의 도전과 창의를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공직 사회와 공공 부문의 투명성과 청렴성을 엄격히 확립한다.